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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보석 같은 크리스천, 수 정형외과 이병호 원장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5-05-07 10:28:46
조회수
4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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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일이지만, 우리 시대에 신앙과 윤리가 균형 잡혀 교회와 세상 모두에게 존경을 받는 그리스도인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이병호 ‘수 정형외과’ 원장(40. 전주강림교회 안수집사). 그는 그렇게 쉽게 만나기 어려운 보석 같은 그리스도인이다. 

수술 성공률 70%에 육박하는 '수 정형외과' 

이 원장이 근무하는 ‘수 정형외과’는 전북 전주시 덕진구청 앞에 위치해 있다. 예수병원 정형외과장을 거친 그가 전북지역에서 개인병원으로서는 유일하게 '수지 접합'과 '미세현미경 수술' 전문의 ‘수 정형외과’을 개원한 것은 2001년 11월. 올해로 4년째를 맞는 ‘수 정형외과’의 명성이 점차 알려지면서 현재는 전북지역 뿐 아니라 전남 장성, 충남 장항, 서천 등지에서 매달 50-80여 명의 환자들이 몰려오는 실정이다. 이 분야의 일반 수술 성공률이 50-60%에 그치지만, '수 정형외과’의 수술 성공률은 70%에 육박하고 있다는 것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이 병원의 이야기는 이미 언론에서 여러 차례 다루어졌고, 이 원장은 현재 FM 99.1 '김차동의 모닝쇼‘의 건강상식코너 단골 출연자 중 한 사람이다. 

이 원장이 ‘수 정형외과’를 개원하게 된 동기는 지역에 있는 많은 환자들의 안타까운 사연 때문이었다. “초기 전북지역 환자들 80%-50%는 서울, 일산, 안산 등지로 수술을 받으러 갔습니다. 이 수술은 사고 발생 후 6시간 내에 해야 하는데, 전북지역 환자들이 서울 일대로 가다 보니 서울까지 가는 시간 3시간, 서울에서 러시아워 때에 걸리기라도 하면 수술도 못해보고 죽었습니다. 이런 현실이 안타까워서 2001년 11월 덕진구청 앞에 ‘수 정형외과’을 개원하게 되었습니다. 환자는 6시간 내에 응급처지만 제대로 되고, 빠르게 손상된 부분을 가져온다면 회복될 수 있습니다.” 

가난했던 시골 어린 시절, 제대로 치료도 받지 못하고 돈이 없어 치료를 중단하다 죽어가는 이웃들을 보면서, 의사로서의 꿈을 품었던 이 원장. 그런 그가 11년 예수병원에서의 이 분야 전문 경력을 갖고 전주에 병원을 개원하게 되어, 환자들은 이제 먼 곳까지 가다가 수술도 못하고 죽는 처지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수술방은 전도의 좋은 기회...환자 손 붙들고 기도 

이 원장의 고향은 익산 춘포. 크리스천 가정에서 자랐고 어린 시절부터 교회를 다녔다. 현재는 전주강림교회(양인석 목사) 안수집사다. 전주강림교회와의 인연은 그가 전북대 의대 학생회장 시절 때부터다. 당시 그는 장로교 청년회 연합활동도 열심히 하던 기독 청년 운동가였고, 또 학생 운동가로서 기독교 안밖의 대중집회에서 큰 환호와 함께 등장하기도 했다. 그런 그에게 힘들 때마다 영적인 위로와 안식을 제공했던 곳이 전주강림교회였다. 그는 교회를 통해 상당한 위로를 얻었다고 한다. 

이 원장은 기독교사회운동 분야에 열정적이었다. 그것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그런 그에게 99년 네팔 단기선교는 보수적 신앙 열정도 훨씬 깊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기간이 기독교사회운동, 학생운동하면서 다소 침체되었던 신앙적 열정을 다시 회복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 

그의 보수적인 신앙 열정은 예배와 기도와 전도에 힘쓰는 모습에서 잘 드러난다. 그는 개원 때부터 신입사원 면접 때 “‘수 정형외과’에서 신앙생활하는 것과 예배 드리는 것은 기본이다”라는 조건에 동의할 때만 직원으로 채용했고, 개원과 동시에 현재까지 직원과 환자들이 함께 매주 월요일은 예배를 드린다. 이 원장의 신앙은 수술방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그는 수술하기 전에 환자의 손을 잡고 기도한다. 

“종교에 관계 없이, 우선 환자분에게 이야기하고 함께 기도를 드립니다. 물론 기도 전에 신앙 권면을 합니다. 수술방에서는 환자들의 마음이 불안하니까 기도하자면 다 좋아합니다. 그리고 기도는 환자와 의사간의 유대감을 깊게 해서 수술뿐 아니라 회복에도 좋은 영향을 줍니다. 큰 수술 같은 경우는 미리 수술방에 가서 기도로 준비합니다. 대부분 수술 후 ‘그때가 정말 편안했습니다’라고 합니다. 저는 바빠서 전도할 시간도 별로 없고, 수술 전에 권면하고 기도할 때가 전도하는 때라 생각합니다. 저는 전할 뿐이고 열매는 하나님이 거두시리라 믿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는 걸 기뻐하신 것 같습니다.” 

첫 봉급부터 장학사업 시작..현재 30여 곳 후원 
이 원장은 사회적 봉사에도 누구보다 열심이다. 그가 의대생 시절부터, 또 의사로 첫 봉급을 받을 때부터 장학사업에 돈을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현재 무려 30여 곳을 매월 정기적으로 돕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장학금을 지급하는 학생들이 10명. 결식아동학교 6곳, 김제 지구촌 마을, 월드비전, 노인복지 등 15곳을 후원하고 있다. 또 몇 곳의 개척교회에는 선교헌금을 하고 있으며, ‘여성의 전화’와는 자매결연을 맺어 무료진료 및 입원치료를 하고 있다. 아동학대와 관련한 어린이보호재단들을 돕는 일과, 노숙자들을 위한 쉼터를 돕는 일도 빼놓을 수 없는 섬김의 영역이다. 그는 이 많은 선한 사업들을 남 모르게 매월 쉬지 않고 하고 있다. 

“가난한 농촌에서의 성장, 학비도 제 스스로 벌어 다녀야 했던 고달팠던 청년기를 보냈습니다. 그래서 우리 사회 약자들의 설움을 알 수 있었습니다. 또, 의대생으로서 약자편에 서서 학생운동과 기독청년활동을 하면서 깨달은 바가 많았습니다. 앞으로 봉사의 손길을 더 넓힐 계획이며, 장기적으로는 장학재단을 세우고 싶습니다.” 

이 원장은 앞으로 수지접합 관련 모든 수술을 담당하는 전문병원으로 ‘수병원’을 성장시킬 꿈을 갖고 있다. 또, 병원에서 얻은 경제적 이익을 사회에 환원하는 차원에서 장학재단 등을 만들어서 우리 사회 약자들의 옷을 입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섬길 계획이라며, 도움의 손길을 베풀 수 있도록 병원을 축복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다고 잔잔히 웃었다.